2007년 7월 29일 일요일

[영화]5.18광주민주화 운동과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왔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화통이 터지고,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란게 참 부끄럽더군요.

그래서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잠깐 찾아보았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그 사건은 무엇인가?
전두환이 1980년 5월17일 전국에 계엄령을 발표합니다. 여기서 계엄령은 국가비상사태 때 병력(兵力)으로써, 개인의 기본권의 일부에 대하여 예외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제도(法制度). 를 말합니다. 그리고 1980년 5월18일 전라도 광주는 피로 물들게 됩니다.

이당시 광주에서 시위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김대중이 전두환의 독재정치와 관련해서 위험적인 대상이었으며, 김대중을 지지하던 지역이 전라도 였습니다.
그로인해 전라도 광주사람들을 빨갱이로 몰고 죄없는 시민들을 총으로 쏘고, 벌거벗은채로 길거리에 질질 끌고 다니며, 몽둥이로 시민들을 무참히 때려 강제로 진압할려구 한 사건으로 간략히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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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던 사람들만 죽인것이 아니라, 아무상관없는 사람도 전부 죽이고, 심지어는 새생명과 임산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광주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으며, 빠져나가게 될경우 민심이 안좋아 지기때문에 벙어리며 편지며 전화까지 봉쇄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말하길 광주에는 죽은 사람이 없다고 방송을 하고, 보상은 커녕 무참히 짓밟힌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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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을 알려면 먼저 12.12사태를 알아야 합니다.

10·26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된 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 등의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몇사람의 권력을 위해 희생되는 현실을 참을 수 가 없어서 1980년, 여러곳에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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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7일
마침내 전국의 비상계엄령이 공포 되었고,

18일..
피로물든 광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80년 5월 18일

00: 05
광주 지역 민주 인사 등 연행

01: 00
광주 일원 공수부대 투입

02: 00
계엄군, 전남대·조선대·광주교대 점령 학생 112명 체포

08: 00
전남대 등 대학교 휴교령(9월 10일까지), 광주·송정·목포 등 고교 휴교령

09: 00
전남대생들 등교 시작

10: 00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50∼60명과 공수대원 대치

10: 20
전남대생 5백 명 공수부대와 투석전 충돌, 전남대생 계엄 철폐를 외치며 도청으로 진출

10: 30
전남대 후문 시민 연행

10: 50
광주역 앞 전남대생 2백 명 집결

11: 00
시위대 금남로 3가 가톨릭센터 앞 연좌 시위

11: 15
시위대 충장로파출소 앞 대치 후 파출소에 투석

11: 30
시위대 가톨릭센터 앞 대치, 연좌 농성

14: 30
동국대 주둔 공수 11여단 광주로 출발

14: 42
도청 앞·금남로 일대 1천 5백여명, 충장로 일대 1천 6백여 명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진압 실패, 7공수 35대대, 31사단 96연대로부터 도청 앞 진압 명령 수령

15: 00
공수부대(7공수) 시내 투입, 진압 작전 실시
- 가톨릭 센터: 33대대
- 충장로: 33대대
- 시위 군중 체포(337명)
- 공중에서 헬기 3대 선회

21: 00
통금 실시, 전국에서 소요 주동자 544명 검거(광주 연행자 477명)


◈ 80년 5월 19일

00: 05∼05: 20
11특전여단 광주 도착, 진압군 재편성

08: 00
계엄사, 민주 인사 및 학생 549명 검거 발표(전국 총계)

09: 00
금남로에 군중들 운집 시작

11: 00
시위 진압 탱크 동원 공수부대 잔혹한 구타, 연행, 총검 사용, 체포된 시위대를 발가벗겨 무릎을 꿇게 한 뒤 머리를 땅에 처박게 하고 군화로 전신 구타. 광주 시내 초등학교 수업 중단 조치, 중·고등학교 귀가 조치

11: 20
도경 작전과장 데모대 놓아주었다고 동구청 입구서 계엄군 하사 등으로부터 집단 구타, 곳곳 부상자 속출

12: 00
수업 받던 학원생 연행

11: 30∼13: 00
시위대 107명 연행

14: 50
일반 시민들의 합류로 시위대 급증

16: 50
최초의 발포: 광주고와 계림파출소 사이 동원빌딩 앞에서 고장난 장갑차 1대, 시위대 150여 명이 접근하자 장갑차에서 발포, 4명 중상, 일부는 계엄군이 싣고 감

17: 40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앞 시위대 완전 분산(비가 내리기 시작함)

18: 00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주차장에 시체 7∼8구 목격됨. 광주공원 시위대 수천 명 '전두환 타도'외침

19: 30
전대 의대 앞 골목길서 최미자양(당시 19세) 계엄군 대검에 가슴 짤림

21: 00
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시위 지속

23: 08
3특전여단 광주에 투입


◈ 80년 5월 20일

04: 00
시민 궐기문 살포됨

07: 20
서2동 전남주조장 빈터에서 대검으로 난자, 살해된 월산2동 김행부씨(36)가 변사체로 발견됨. 오전 대체로 소강(비가 오는 날씨)

10: 00
대법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확정

10: 20
금남로 3가 30여 명의 젊은 남녀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알몸으로 붙잡혀 기합받는 것이 목격됨. 오전 외신기자, 독일 NDR·ADR TV 유르겐 힌츠페터 광주 도착

14: 20
서방 삼거리 공수부대의 화염방사기에 사망·부상자 발생, 광주역 부근 택시기사 20여 명 조직적 대응책 논의, 금남로 일대 제3공수 11대대 15만 군중에 포위당함

16: 20
가톨릭센터·광주고·충장로·금남로 등지에 시위 학산, 시위대가 도청을 향하는 6개 방면 모든 도로에 밀어닥침

17: 50
충장로 시위대 육탄으로 경찰과 충돌, "광주 시민을 적으로 취급하는 군과 사생결단을 낼 테니 경찰은 비켜달라"협상시도

18: 20
택시기사 시위 참여. 택시 1백 대가 3줄로 광주역 쪽으로 진출

18: 40
전남대 앞 5백 미터 지점, 계엄군 1명사망, 광주역 쪽에서 택시·화물트럭을 앞세운 시위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로 집결

18: 50
택시 120대, 화물트럭·버스 20대 라이트 켜고 금남로 차량 시위. 시민 2만 명 뒤따름

19: 45
도청 광장 공수부대 포위됨. 시위대 태극기를 흔들며 도청으로 진격

20: 00
시위대 MBC 방송국 점령. 체포된 시위대 도청으로 연행. 소방서 시위대 점령. 2∼3대의 소방차 도청 앞 6백 미터 지점까지 돌진. 계림동 시위 군중 1만∼3만 증가(도청 진격), 전남대 병원 앞 1만 증가(도청 진격)

20: 10
노동청 앞 시위대 MBC에 화염병 투척,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시위대에 화학탄 발사

20: 50
시위 군중 시청 점령

21: 00
도청 차고 불탐, 외곽 지역 주유소에서 화염병 제작, 노동청 앞 시위 진압 경찰 4명 사망

21: 40
MBC 방송국 전소

22: 00
심야로 이어지는 투쟁 대열. 광주 시내 모든 거리는 시위 군중 10만 명 이상 운집. 광주역에 투입된 31사단 병력 퇴각, 금남로 3공수 11대대 고립 상태, KBS 앞 3공수 15·12대대 2만 명 시위대와 대치. 전남대 입구 16대대 1백 대 차량과 시위대와 대치. 광주시청 13대대 1만여 명 시위대와 대치. 양동복개상가 20∼30명의 계엄군 시위대에 포위당함


◈ 80년 5월 21일

00: 10
계속 대규모 시위, 전옥주씨 조선대 앞 스피커로 "전두환 물러가라"외치며 시위 주도

00: 20
조선대 쪽 계속 총소리

01: 00
31사단 화염방사기 소대 출동

02: 10
3공수여단, 광주역에서 전남대로 퇴각02: 13 시외전화 불통으로 외부와의 연락두절, 광주 지역 일반 전화선을 지시에 의거 단선 조치

02: 30
계엄군 20사단 사령부 및 62연대 용산역 출발

05: 00
시위대, 2.5t 트럭에 시체를 운반

05: 50
광주역에서 출발한 시위대 1천여명 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연좌 농성. 아침: 계엄사령부 최초로 광주에서 유혈 충돌 공식 발표

08:00
시위대 당국과 협상 시도

08: 50
시위대 광주교도소 기습, 자진 철수

08: 58
20사단 사령부 송정리 도착

09: 00
시위대 아시아 자동차 공장 진입. 대형버스 22대·장갑차 3대·군용 트럭 33대·민간트럭 20대를 몰고나와 도청으로 진격, 버스는 외곽에서 도청으로 시민들 수송, 군인의 과잉 진압 사과 요구, 현정부 규탄, 뉴욕 타임스 특파원 심재훈, 르 몽드지 필립 퐁스 광주 도착

09: 20
한국은행과 가톨릭센터 사이 5천이상 군중, 시체 2구 손수레에 싣고 마이크로 "계엄군은 시체 인도하라"고 주장

09: 50
시민 대표와 장형태 도지사의 협상

10: 30
군헬기 4대가 도청·조선대·전남대에 이·착륙하며 도청 지하실에 모아놓은 시체와 진압 무기, 주요 기밀 서류 공수 시작. 계엄사령관 담화문 발표

10: 48
군헬기에서 "공수 병력 철수시키겠다"방송. 도지사·시장도 설득 방송

10: 56
계엄군 서울로부터 코와 귀를 자극하는 CS액 수송

11: 00∼12: 00
동별로 시위대에게 음식 제공

11: 30
전남 지역 학생 총연맹 명의로 '오후 2시 도청 앞에서 도민궐기대회를 갖자'는 전단 배포. "전남대생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조선대생은 계림파출소, 서강실업과 간호대는 MBC 방송국, 고교생은 산수 오거리, 시민은 도청으로 집결하라"

11: 50
가톨릭센터 앞 벽보 부착: '때려잡자 전두환, 물러가라 최돼지, 사라져라 신현확, 비상계엄 해제하라, 칼부림이 웬말이냐, 너와 나 형제 지방색 타격.'

12: 00
2시까지 퇴각하겠다던 계엄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노한 시민들이 차량을 앞세우고 도청으로 진격. 공수부대 분수대까지 퇴각. 최초의 집단 발포, 시민들은 공포탄인 줄 알았으나 도로의 시민들이 쓰러짐. 부상자를 구하려는 시민들에게까지 사격. 계엄군은 도청과 수협·전일빌딩 옥상에서 정확한 조준 사격을 함. 전남대 정문에서도 발포. "러닝 셔츠만 입고 한 손에 태극기를 든 청년이 탄 장갑차가 도청을 향해 질주해갔다. 그때 도청 쪽에서 한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공수부대의 조준 사격이었다"(증언).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과 함께 장갑차에 탔던 청년이 총탄에 맞고 그대로 넘어졌다. 당시 사상자가 얼마였는지는 취재가 불가능"(월간조선, 1985.7)

12: 10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에 계엄군 4∼5명이 쓰러짐. 계엄군은 살상을 예고하듯 분수대 앞에 횡대로 도열

12: 30
분노한 시민, 각목을 든 채 도청을 향해 돌격. 비무장 시민에게 발포. 시위대 맨 앞의 503벤츠 고속버스가 군경의 저지선으로 돌격하자 계엄군 쪽에서 LMG기관총 난사, 차에 탄 시위대 20여 명 살상당함

12: 40
버스 4대 화순 중앙파출소에 방화. 주민 합세 후 무기 탈취

12: 45
시민에게 본격 발포(전교사 작전 일지 80-4호)

12: 55
도청 앞 YMCA에서 계엄군 발사, 시민 수십 명 살상. 분수대 앞 계엄군은 횡대로 앉아 금남로 쪽을 향해 거총 자세

12: 58
광성여객 버스 2대가 도청으로 진격. 공수부대 발포. 운전사 사망. 장갑차 1대가 도청으로 진격, 집중 사격을 받았으나 학동 쪽으로 빠져나감

13: 00
무장을 시작한 시위대

13: 40
군용헬기 1대 도청 광장에 착륙, 일반 계엄군 9명 태우고 이륙, 도청 광장 임시 헬기장이 돼 군용기와 경찰 헬기가 수시로 이·착륙, 공수부대로 부상자와 중요 문서 이송

13: 50
전남도청에서 도지사가 시위 군중에게 요구 사항을 승낙할 테니 해산하라고 방송

13: 55
"3시까지 연행자를 석방한다"라고 군용헬기 선무 방송

14: 00
월산동 로터리와 전남도청 부근 헬기 기총 소사

15: 00
광주 시내 종합·개인 병원 총상 환자들로 가득 참

16: 30
광주 지역 공수대원 철수 명령

17: 00
시민군 총기 교육 후 지역방위대 편성, 광주 공원 광장에서 특공대 편성, 헌혈하고 돌아가던 박금희양 총에 맞아 즉사, 도청에 남은 계엄군 화순 주남마을 쪽으로 철수

24: 00
외신 기자, AP통신 테리 앤더슨, 타임지 사진기자 로빈 모야 광주 도착


◈ 80년 5월 22일

00: 05
완도 경찰서 파괴

03: 00
영광 1천여 명 시위 후 해산

04: 55
계엄군 증원 병력 광주 도착(20사단 60연대)

05: 00
남평에 매복중인 계엄군의 사격으로 사망 1명, 부상 3명

07: 30

전남대 교정에서 암매장된 고교생 발견. 아침 뉴욕 타임스와 르 몽드지 1면 머릿기사, 최초로 세계에 알려짐

08: 10
도청 간부 수습 대책 논의

09: 30
계엄군 피란 행렬에 집중 사격

10: 30
2군사령부 자위권 행사 지시. 목포 일부 파출소 피탈

12: 00
도청 앞 5만 시민궐기대회 개최. '5·18수습대책위원회'결성. 전남일보 현관에서 무기 회수

12: 12
함평 경찰서 점거. 시위대 수천 명 시위

12: 00∼15: 00
수습위원 계엄사 방문, 협상 결렬

13: 00
무등도서관 앞 1명 사망

13: 16
화순-광주간 도로에서 공수부대, 차량 1대 사격, 1명 사망, 7명 체포

14: 00
목포역 광장 시민궐기대회

14: 30
광주시장이 비행기에서 호소 전단 살포, 박충훈 총리 호소문 발표

15: 00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 개최, 매일 오후 3시와 9시 2차례 도청 앞 분수대에서 궐기대회 개최 결정

15: 18
관 위에 태극기를 덮은 시체 18구 도청 분수대에 안치. 추도식 거행

16: 00
부상자를 위한 모금 운동

16: 30
영암 지역 무기 회수 시작

17: 00
계엄사와 협상 결과 보고. 통합병원 통로에서 62연대 2대대와 시민군 교전: 사망 3, 연행 25, 부상 10명

17: 55
848명의 연행 시위대 석방

18: 00
학생수습위원회 구성. 도청 상황실에서 증명서 발급. 쌍촌아파트 교전

18: 30
공수부대 화순 너릿재 터널 트럭으로 봉쇄. 전대병원 시체 18구 도청 분수대 앞으로 옮겨 추도식. 관구입을 위한 모금 운동 전개

19: 10
사망자 56명, 도청 앞 광장에서 관을 놓고 추도식

22: 00
무기 회수를 둘러싼 시민군 내부 대립 심화


◈ 80년 5월 23일

01: 20
해남 우슬재에서 교전. 시위대 20명 이상 사망. 다수 부상

06: 00
광주시 안정 회복. 남녀 고교생 7백 명 시내 전역 청소. 장례반·총기 회수반·차량 통제반으로 구분. 도청 중심으로 대자보, '민주시민강령'선포
1.시민은 시민군을 믿고 적극 협조합시다
2.시민군은 위장된 계엄군 및 불순분자를 주의합시다
3.질서 회복에 힘씁시다
4.평소 생활로 복귀합시다

07: 00
시청 직원과 시민들 거리 청소에 나섬

09: 00
녹두서점에 모인 교수·학생 시민궐기대회 계획. 학생들 무기 회수. 구용상 광주시장 전직원 정상 근무 지시

10: 00
수습대책위원회 조직 개편,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전대병원 26명, 기독병원 17명, 적십자병원 21명, 조대병원 1명, 요한병원 2명, 기타 3명, 도청 내 44명 등 114명

10: 05
전남대 구내에서 교련복 차림 남자 고교생 가매장돼 있는 것을 도청으로 운구

12: 00
8백여 정 총기 회수, 차량 통제반 차량 단속

13: 00
계엄사 연행 학생 34명 석방

14: 00
주남마을 양민 학살. 18명 사망. 수습위원 10명 무기 1백 정 반납

14: 20
학생들 시민 시체 50구 상무관서 분수대로 운구. 시민 2만 명 운집

15: 00
제1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장례 준비 모금 운동 전개해 1백만 원 대책위에 전달. 지원동 버스 종점에서 총격전. 계엄사 붉은 글씨의 경고문을 전역에 살포

16: 00
지원동 민가에 계엄군 난입, 시민을 향해 난사.

19: 40
계엄분소는 수습위원들에게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927명 연행해 882명 훈방하고 23일 34명을 석방해 현재 45명만 남아 있다고 발표

21: 00
목포역 시국성토대회. 5만여 명 횃불 시위


◈ 80년 5월 24일

새벽
외곽 지역을 돌아다니며 무기 회수(조비오 신부 등 수습위원 4명)

06: 00
무기 2천 7백 정 회수(50%)

08: 00
광주 시내 생필품 품절. 무기 자진 반납 시한 12시까지 연장. 수습위 사망자 확인·미확인 합쳐 6백여명. 중경상자는 2천여 명이라고 발표

09: 00
충정작전을 위한 계엄군 배치

10: 30
계엄군의 오인 사격. 31사단 96연대 3대대와 기갑학교 병력 사망 5, 중상 11, 경상 11명, 주남마을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양 헬기로 후송

12: 00
시체 3구 암매장한 계엄군 무선교신 도청

13: 00
계엄사, 무기 반납 시한을 18시로 연장. 11공수 주남마을서 철수 개시

13: 10
공수부대 철수하면서 좌우 난사. 원제마을 저수지서 멱감던 방광범군(당시 10세) 숨지고 10분 뒤 진제마을에서 총소리 피해 달아나다 벗겨진 고무신 주우려던 전재수군(당시 10세)이 총에 맞아 사망

14: 05
계엄군의 오인 사격. 효천역 전방 1Km 지점 11공수와 보병학교 병력 사망 9명 부상 33명 발생, 진월동 양민학살 2명 사망

14: 10
북동에서 학생 가장한 불량배가 주민들에게 금품을 강요한다는 제보 받고 시민군 출동

15: 00
수백의 공수대원 송정리 비행장에서 이동. 송정리에서도 헬기 기총소사. 제2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전북서 환자용 산소 1백통 지원

16: 30
도청 앞 상무관에 미확인 시체 40여 구 안치

18: 49
계엄분소 예하 각 부대에 확인 사살과 이동시 표식을 달 것을 지시

21: 00
민간인으로 위장 계엄군 시내 투입


◈ 80년 5월 25일

08: 00
조작된 독침 사건 발생

11: 05
초교파적인 모금 운동. 시체 120구로 늘어남

12: 35
목포. 비상구국기도회 열림

13: 10
목포서 기독교인 1천 명 시위 이어 목포역 광정서 구국기도회

13: 35
피란가던 청년 2명 산 속에서 사망

14: 20
화순 방면 1번 버스 종점 부근서 시체 2구 발견됐으나 계엄군이 인도 거부

15: 00
제3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궐기대회 후 검정 리본 착용. 가두 시위

19: 00
광주시 영세민에게 가구당 5천 원씩 지급. 정부미 6천 가마 방출

20: 00
계엄사, 광주 다시 악화됐다고 발표


◈ 80년 5월 26일

04: 00∼06: 00
외곽 지역 주둔 계엄군 광주 진입

05: 00
시민수습대책위 17명이 '총알받이로 나가 계엄군을 막자'고 결의. 진입 현장에서 탱크 앞에 드러누워 계엄군의 시내 진입 저지

07: 20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알리는 방송

11: 30∼13: 00
제4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15: 00
제5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우리는 왜 총을 들게 되었나' 낭독. 7공수 광주공원 소탕 명령 받음

16: 00
광주 상황을 알리기 위해 탈출(김요셉)

19: 00
외국인 207명 광주에서 철수

21: 00
전교사 문관 도청 잠입. 지하실 TNT 뇌관 분리 제거 후 복귀. 특전대 하사관 시내 사복 정찰

23: 00
시민군 병력 배치. 계림초교 30명, 유동 삼거리 10명, 덕림산 20명, 전일빌딩 40명, 전대병원 옥상·서방시장 10명, 지원동 30명, 도청 2백∼3백 명


◈ 80년 5월 27일

00: 00
시내전화 끊김, 특전사 특공대 행동 개시

02: 00
20사단 행동 개시, 계엄군의 진입을 알리는 가두 방송

03: 30
계엄군 광주 전격 기습

04: 00
31사단 무등경기장 중심으로 행동개시. 7공수 광주공원 도착. 11공수 관광호텔·전일빌딩 점거. 도청 앞 완전 포위. 금남로 중심 시가전

04: 10
3공수 도청 후문 월담. 도청 총격전

04: 30∼06: 30
도청 함락

05: 00
계엄분소장 담화 발표. 광주 KBS 행진곡과 함께 군의 진입을 알리는 방송 되풀이

05: 23
광주시 점령 완료

06: 00
KBS를 통해 '폭도들은 진압됐다. 시민들은 위험하니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 방송 (영어)

07: 30∼09: 30
기갑학교 전차 14대 A.P.C. 1대 무력시위. 공무원 근무개시, 시내전화 개통

08: 00
광주경찰서 노병기 경장 풍향동서 출근길에 총탄 맞고 사망

08: 40
도청 안에 시체, 회의실 앞 분신소 시체 1구, 뒤뜰에 1구, 민원실 계단 앞 5구, 건물 사이 7구, 경비과 옆 1구 등 총 15구

10: 30
도경 지하실에 숨어 있던 고교생 등 7명 생포

11: 00
목포, 제5차 민주 헌정 수립을 위한 목포시민궐기대회, 시내 주요 건물 옥상 점거

12: 00
장형태 지사 의원 면직, 후임에 김종호 금호실업 대표

22: 50
목포 시민, 3천 5백여 명 횃불 시위.


28일 새벽 4시경
시위대 체포·연행으로 목포 시위 막내림

사실 그때당시 사병으로 근무했던 군인보다도 위에서 자기의 권력을 챙겨먹는 이기적인 윗대가리들이 잘못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보면 그사건이 폭도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있는데, 그럼 어린아이와 아기 그리고 힘없는 임산부를 죽인건 무슨이유인지요?
설마 어린아기가 총들고 시위를 했다고 보시는건 아니겠지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그때당시에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전사모와 화려한 휴가 글읽기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공연]V.O.S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저희 크리슈머에서 V.O.S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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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기 :
http://www.cresumer.com/crezine/designnews1_view.asp?Idx=91&page=1

이벤트기간 : 2007. 7. 27(금) ~ 8. 2(화) 17시까지
참 여 자 격 : 기존회원, 신규회원 모두
참 여 방 법 : VOS 콘서트 응원 및 축하 메세지를 덧들로 남겨주세요.
                    참여해 주신 분들 중 추첨을 통해서 선물을 드립니다.
당 첨 자 수 : 15분-1인2매증정 (추첨방식)
당첨자발표 : 2007. 8. 2(수) 19시(본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참고하여 주십시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www.cresumer.com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잡담]스타제국 V.O.S 와 함께...

ps. 크리슈머에서 V.O.S 콘서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내용보기]

7월24일 스타제국 엔터테이먼트에서 바베큐 파티를 한다고 초대를 받아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꽃등심과 기타 양주 및 푸짐한 고기들...
예쁜 분들이 밥도 주시고, V.O.S 분들과 고기도 먹고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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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많이 흔들리고, 내눈도 감겼네 ㅠㅠ.
평소에 TV를 보면서 경록씨에 대해 참 매력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같이 찍게 되서 좋았던거 같았다. (내 오른쪽 팔이 경록씨 허리를 감았네 ㅋ)
VOS를 한글로 치면 팬 이라는걸 이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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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위해 고기를 열심히 굽고 계시는 친절한 스타제국 분들 (고기 굽느라 너무 고생하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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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제국 갈때 와인을 사갔는데 전부 먹고, 오지호씨가 사오신 양주라면서 사장님이 주셨는데, 맛이 괜찮았던거 같다..

서인영씨를 못보고 간게 아쉽긴 하지만, 좋은 대접을 받고 신경많이 써주신 스타제국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7년 7월 21일 토요일

[영화]다이하드 4

다이하드 4를 보고 왔다.
존 맥클레인 (브루스 윌리스) 이 다이하드 3과 틀리게 많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액션은 역시 입이 벌어질정도였다.

컴퓨터 해킹과 시원시원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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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액션과 전투기, 헬기 등등 역시나 액션영화의 자리를 우뚝설수 있는 영화인거 같다.
처음부터 앤딩까지 지루한 부분이 없을정도 였다.

독립기념일에 벌어지는 일들~

존 맥클레인은 역시나 초인(?)이었다. 절대 죽지 않는다 ㅋㅋ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테러범들을 잡는 액션연기를 꼭 다이하드 4를 통해 확인해 보길 바란다.

2007년 7월 19일 목요일

[리뷰]캐논 400D

예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는데, 카메라 살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 하고 있는 상태에서 뭔지 모를 지름신이 방문했는지.. 12개월 이자 만땅으로 간신히 구매한 정품 캐논 40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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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지르는거 세로그립까지 같이 질럿다.. 폼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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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D보다 액정이 좀 넓어졌다.
400D 바디만 질렀더니, 기본렌즈도 안주네 -.- 그래서 표준형인 탐론 17-50 (병행)도 같이 질렀다..
7일사용하다 양사이드 포커스가 줌땡겼을때 잘 못잡길래 새걸로 교환했다.

탐론 SP AF 17-50mm F2.8 XR Di II

탐론 SP AF 17-50mm F2.8 XR Di II


렌즈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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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폼잡을려구 핸드그립까지 샀다. 해링본이 좋다는 주위 얘기를 듣고... 내가 미쳤지 ㅋ

이거 장착하는데에도 1시간은 걸린듯하다 왜냐.. 처음 끼어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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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가 있어야 사진을 찍을것이 아닌가?
그렇다 메모리도 extreme III 4.0GB 로 이성을 잃고 지르고야 만것이다..

속도가 빠르다는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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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뭘까?
캐논EF 50mm f/1.8 ll  형이 사용하던걸 몰래 가져와서 내꺼인양 쓰고 있다.

인물 전용렌즈를 샀다고 자랑하길래 "아~ 그럼 이거 필요없겠네?" 라고 설득을 시킨것이다. ㅋㅋ






이제 카메라 입문 1달이 되어간다.. 김아타 선생님의 작품을 우리 사무실에 걸어놨는데, 많은 노력과 공부, 사실 카메라의 성능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렌즈는 우리 눈이고, 가장 큰 메모리는 우리의 뇌인걸 마음속 깊이 새기며, 여자친구와 천일되는날을 사진 속에 남기고 싶어서 구매한게 가장 큰이유였는데, 이왕 지른거 조금이나마 아름다운것들을 남기고 싶은게 내작은 바램이다.

[잡담]스타킹 기막힌 소녀

자자~ 레츠고~
sbs 스타킹에 출현한 기막힌 소녀~

http://netv.sbs.co.kr/box/multigallery/box_multigallery_detail.jsp?uccid=10000070436



저번에 보고 계속 기억에 남아서 포스팅 해봅니다.^^

[잡담]중국 코끼리 아저씨

중국에 코끼리 아저씨

거대한 종양때문에 얼굴이 엄청 커진(?) 중국의 코끼리 아저씨가 수술에 들어간다..

31살 후앙 춘카이 씨는 코 아래부터 거대한 종양이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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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혹의 무게만 해도 20kg 이나 되며 현재 청력과 이가 모두 빠진 상태라고 합니다.
수술을 할경우 과다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효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결정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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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135cm 에서 성장이 멈췄다고 합니다.
15kg 의 종양을 떼어내야 한다는데.. 성공적인 수술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2007년 7월 16일 월요일

[사진]티뷰론 터블런스

나의 애마 티뷰론 텨블러스
이놈의 애물단지... 보험료도 비싸고, 세금도 비싸고, 기름도 많이 먹고(평상시 사람들이 생각하는것 만큼은 많이 안먹습니다. 연비 9키로~10키로는 나오는거 같습니다. 중요한건 운전자의 운전습관)...
하지만 나의 출퇴근을 책임지고 있는 나의 보물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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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티뷰론 세금과 보험료로 검색해서 많이 들어오시는거 같아서 간략히 알려드리자면, 1년에 총두번 20만원정도 세금을 내고, (1년에 합이 40정도)
보험료는 자차포함 1년에 150만원대에서 이번에는 무사고라서 그런지 보험료가 130만원대로 줄었더군요.. 상담원에게 물어보니 스포츠카가 아닐경우 30만원 가량 가격이 다운된다고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며 둘이 타긴 좋은데 3명이상 탈경우 많이 불편합니다. 그냥 세워나도 돈들어가는 곳이 많으니 잘생각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차상태는 괜찮은거 같습니다. 초반 스타트와 언덕에서 달리는 힘은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잡담]네이트온 영화 정보 페이지 오류

네이트온의 기능중에 영화나 영화제목을 입력이 싸이월드 영화 페이지로 바로 이동할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

오늘 우연치 않게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트랜스포머 이야기가 나왔고, 아무생각없이 트랜스포머를 클릭해 보았다.. 클릭함과 동시에 오른쪽에 해당 정보가 나오고 예매할수 있는 버튼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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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긴 했지만, 어디로 이동이 되나 궁금증을 못참고 클릭을 했더니, 싸이월드 영화 페이지로 연결이 되었다..

어라?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싸이트가 깨지네?
아무리 봐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동안 계속 새로고침해도 똑같은 증세다..

혹시나 공사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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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 인거 같진 않고.. 작업도중 무언가 잘못된거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싸이월드측에서는 이사실을 알고 있을런지...

싸이월드 측은 빨리 확인해 보시길...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잡담]13일의 금요일

7월 13일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입니다.
문득 제가 중학교 1학년 시절 13일의 금요일에 하늘이 노랗고, 천둥을 동반한 비가 왔던게 기억이 납니다.

미국에서는 2천만명 정도가 13일의 금요일을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영화 "13일의 금요일" 도 어렸을적 굉장히 무섭게 봤었던거 같습니다.

13일의 금요일의 유래는 무엇일까?

우승 후보였던 육상 선수가 갑자기 쥐가 나는 바람에 등수에도 들지 못하고, 컴퓨터 통신망이 뒤죽박죽 되고, 여행 취소와 거래 일정 연기 등으로 수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는 날. 영국 선원들은 출어를 하지 않으며,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은 차나 비행기로 가는 모든 여행 일정을 취소시켰다는 날. 이 날이 바로 불길한 날의 대명사인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이다.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여기는 미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금요일이었고, 최후의 만찬에 모두 13명이 자리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89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사업가가 자신을 포함하여 13명과 함께 13일의 금요일에 저녁 식사를 한 직후 살해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 후 유럽에서는 공교롭게도 13명이 식사를 할 경우에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놓고 그 의자에 Kasper라는 검은 고양이 조각상을 앉혀 두어 불운을 피했다고 한다. 13이라는 숫자와 금요일에 대한 불길한 미신은 차츰 사람들의 뇌리에 스며들었으며, 아이스하키용 마스크를 쓴 미치광이 제이슨(Jason)을 주인공으로 한 공포영화 <13일의 금요일>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해에 평균적으로 세 번씩 찾아오는 13일의 금요일을 그리 불길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영국의 한 사업가는 13일의 금요일에 대서양 횡단 비행기를 탈 때마다 좌석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비어 복잡하지 않아 이런 날을 더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13을 아주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 반면, 숫자 12는 행운의 숫자로 생각한다. 이스라엘에는 모두 12부족이 있었으며, 게르만 신화에서도 모두 12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실질적으로 13일의 금요일에 사고도 많이 난다고는 합니다.
혹시나 너무 두렵다고 생각한 나머지 평상시에 그냥 지나가게 되는 일들을 긴장이 더해져서 사고가 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봅니다.

2007년 7월 7일 토요일

[잡담]!important와 언더바 핵

한 규칙 안에서 윈도우용 IE 6 이하 버전을 위한 선언과 이외의 다른 브라우저를 위한 선언을 각각 사용하고 싶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속성에 이스케이프 문자를 사용하는 핵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important 또는 언더바 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용 IE 6 이하 버전에서는 한 규칙안에서 여러 개의 속성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important 핵을 사용하면 제대로 동작합니다.

#nav {
  position: fixed !important;
  position: static;
}

윈도우용 IE 4~6 버전은 첫 번째 선언을 무시하고 두 번째 선언을 적용합니다. 나머지 브라우저는 
!important 키워드가 사용된 첫 번째 규칙을 적용합니다. !important 키워드를 쓰면 캐스케이드 우선 순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important 핵과 유사한 방법으로는 언더바 핵이 있습니다. 속성명 앞에 언더바를 붙이면 표준 호환 브라우저에서는 이 선언을 무시하고 해당 속성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윈도우용 IE 6 이하 버전의 브라우저는 언더바 문자를 무시하고 해당 속성을 인식합니다. 다음 예제 코드의 경우, 최신 브라우저는 포지션을 fixed로 지정하고 두 번째 선언을 건너뛰는 반면, 윈도우용 IE 4-6는 언더바 문자를 무시하고 첫 번째 규칙을 재지정하게 되어 포지션을 static으로 지정하게 됩니다.

#nav {
  position: fixed;
  position: static;
}

css 마스터 전략 책내용 중에서...

css hack 소스를 보실려면 http://www.webmini.net/24918 글을 참조해주세요.

2007년 7월 6일 금요일

[영화]트랜스포머

트랜스포머

영화 : 트랜스포머 (Transformers, 2007)  
감독 : 마이클 베이
출연배우 : 샤이아 라버프, 조쉬 더하멜...더보기
상영정보 : 2007년 6월 28일 개봉
등급 : 12세 관람가
영화장르 : SF, 액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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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없이는 승리는 없다"

네이버 평점 9.25/10

처음부터 앤딩까지 긴장감과 깨끗한 그래픽 작업.. 획기적인 소재로 로봇 생명체가 돌아왔다.
영화를 보고 난후에 장난감이 사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실감나는 로봇생명체의 격투신을 이영화를 통해 찾아보길 바란다.

2007년 7월 2일 월요일

[잡담]괴테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을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남을 자기와 동등한 인격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