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3일 월요일

[영화]용산CGV 판타스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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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4를 용산 CGV에서 보고왔습니다.
사실 판타스틱 시리즈의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본거라서 그런지 내용파악이 잘 안되더군요..

엑스맨과 비슷한 분류의 영화인듯했습니다.
영화보기전날에 과음을 해서 그런지 사실 조금 졸긴했습니다.

강변 CGV에서 영화를 자주 보았는데, 용산 CGV는 굉장히 좋더군요.
VIP ROOM도 강변은 좋지 않다는 느낌이 컷는데, 용산은 보드게임도 있고, 알아서 일하시는 분들이 음료도 친절히 갖다 주시고, 굉장히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영화는 이번주에 딱히 볼만한게 없어서 판타스틱이나 보자! 생각하고 친구들과 아이파크도 구경할겸 겸사겸사해서 보러간거였는데, 영화보다도 많이 변화된 용산이 더 놀랍더군요.

트렌스포머 장난감도 보고, 공기주입식 총(?)도 보았는데, 하나 사고 싶더군요.. 그런데 가격이 좀..
구리시에서 용산까지 한번에 가는 국철이 있어서, 주차비도 아낄겸 국철을 타고, 용산에 도착후 여러군데를 구경하면서, 나름 알찬 일요일을 보낸거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다리가 아프긴 합니다.

용산역에서 GM대우 모터쇼를 하고 있었는데, 이효리 닮은 아리따운 레이싱걸을 보고, 카메라를 집에 두고 온게 후회스럽더군요 ㅎㅎ

다음에 용산에 한번더 가게 되면 꼭 카메라를 챙겨야겠습니다.
용산을 예전에 가보고 요근래 안가신 분들 꼭 한번 시간내서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깨끗하게 변화된 용산을 볼수 있을겁니다.

2007년 8월 7일 화요일

[잡담]전사모와 화려한 휴가

인터넷 카페'전사모' 운영자는 6일 저녁 게시판에 글을 올려 영화 <화려한 휴가>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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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한 특전사가 직접 겪은 글을 읽어보면 그때당시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25년만의 고백 - 한 특전사 병사가 겪은 광주

어떤 사람들은 현재 디워의 관심을 화려한 휴가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언론플레이라고들 하는데..
진실은 절대 왜곡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잡담]오늘이 수능 100일?

오늘이 2008년도 수능 100일남은 날이더군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수능을 까맣게 잊고 산지가 벌써 10년이 되어가는군요.

아침에 라디오를 켜니 수능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저또한 고등학교때 수능 보던 생각이 났습니다.

자전거 타고 독서실에서 공부한 기억 부터 잠자던 기억까지 지금은 오래된 추억이 되버렸지요.

수능 100일이 되면 흔히들 100일주를 마시게 되는데, 과연 100일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시험 잘보는 의미에서 100일주란 말이 생긴거 같은데, 어디가서 100일주 달라고 하면 절대 안줄걸로 압니다. ㅋㅋ

시험을 볼때 자기만의 징크스도 한가지씩은 꼭있을겁니다.
제가 수능 보는날 아침에 컨디션 음료를 마시고 시험을 치뤘는데, 시험문제를 푸는동안 저는 만점이 나올줄 알았습니다. 컨디션을 먹어서 그런지 기분만 그렇더군요.. ㅎㅎ

대표적으로 시험볼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1. 처음 적은 답이 정답이다.
2. 고친답은 항상 틀린다.
3. 수학문제 주관식에는 항상 -1,0,1 이 있다.
4. 한숨자고 공부해야지 생각하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한다.
5. 시험볼때 x이 마렵다.


오늘 라디오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았는데, 공감하시는 분들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듣는것이 제일 좋은 공부법이겠지요..
물론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이 잘안나서 노트에 적어놓고 보는것도 있구요..

필기만 잘하고 한번을 안보면 안적는것과 같지 않을까요?

수능 100일 남았습니다. 고3 수험생 여러분 마지막 남은 3달 가량의 시간을 잘 활용해서 원하는 대학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2007년 8월 5일 일요일

[영화]추억의 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1990년 6월9일에 개봉한 장군의 아들~

이때 내나이 12살 초등학교 6학년때이다. 그때당시 장군의 아들 1편을 보면서 액션이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17년정도 된 지금 봐도 참 재미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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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용으로 1,2,3편을 전부 가지고 있어서, 다시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때 당시에 나온 외화중에는 터미네이터2가 대단한 인기였다.


극장은 못가고, 비디오(2편)를 예약까지 해서 빌려본 기억이 난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에 출연한 배우로는

장군의아들1(1990)
박상민(김두한) , 신현준(하야시) , 김승우(쌍칼)방은희 , 장정국 , 박예숙 , 이일재(김동희)

장군의아들2(1991) 
박상민 , 송채환 , 신현준 , 이일재 , 김기종 , 배미향

장군의아들3(1992)
박상민 , 오연수 , 신현준 , 이일재 , 현길수 , 김대건


박상민은 이때당시 귀여운 외모를 띄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쌍칼로 출연한 김승우는 이때도 정말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신현준은 지금과 틀리게 카리스마있는 하야시 역으로 사실 대사는 많지 않았지만 하야시 역을 잘 소화해 낸거 같다.

사실 30번 이상을 보면서 맞지 않은 더빙과, 액션신에서 얼굴이 틀린부분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그때당시만 해도 100만 관객을 넘은걸로 알고 있는데, 대단했던 숫자였다.
뭐 지금이야 100만 관객으로는 성공했다고 볼수 없지만, 그때 당시만해도 대단했던 영화였다.

장군의 아들로 화려하게 대뷔한 연애인들도 많았으며, 이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역은 종로꼬마 역활 이었다..

어렸을적 날렵해 보이는 종로꼬마가 얼마나 멋있게 보였던지..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상민 (김두한) 의 대사중에 '나 종로에 김또깐 이라고 해' 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얼마나 대담한 말투던가.. 사실 그때 나이에 멋있게 보이기도했다.

더빙 시절 영화 때부터 지금의 발전된 CG영화 까지, 한국영화의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 많이 발전될 한국영화를 기대해 본다..

2007년 8월 2일 목요일

[영화]성공한 디워 (D-War)

디워는 성공했다..
디워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단어가 '성공' 이었다.
영화 보기전에 스토리가 안좋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렸지만, 실제로 보고나니 '스토리도 괜찮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중간중간에 재미를 위해 잠깐 나오는 코믹한 단어와 행동들..
전체적으로 꽤나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용가리에 비해 배우들이 좋아서 그런지 스토리도 어색함이 많이 없어진거 같았다.
하지만 몇몇 배우의 연기가 거슬리긴 했었다.
작품의 부족함보다도 '아~ 이부분을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주연 배우들을 잠깐 살펴보자!  (제이슨 베어, 아만다 브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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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름 :  Jason Nathaniel Behr
생년월일 :  1973.12.30
출생지 :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신체 :  183cm
학력 :  Richfield High School
직업 :  배우
출연작품 : 디 워 (D-War)
스킨워커스 (Skinwalkers)
그루지 (The Gr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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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반다 브룩스
출연작품 : 디 워 (D-War)
플라이트플랜 (Flightplan)
몰딩 클레이 (Molding Clay)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과연 심형래 감독이 만든 작품인가?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약간의 우뢰매 같은 느낌이 있긴 했지만, 정말 훌륭한 작품이 하나 나왔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심형래 감독이 대단해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영화를 봐 왔지만, 이렇게 영화끝나고 나서 박수 치는걸 본거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변 CGV)

그렇다 디워는 한국영화에 중요한 역활을 했다.
그로인해 2007년 한국영화 최고 예매율을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에 한국의 용은 정말 잘 표현 된거 같았다.. 빠른 진행과 CG ! 엔딩때 나오는 아리랑 까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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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이 요즘 쇼프로나 각종 방송프로그램에서 출현해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심형래 감독은 진정으로 디워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여러 인터넷 신문에 쏟아져 나오는 호평들~
이제 심형래 감독은 바보 흉내를 내며, 즐거움만 주는 바보 영구가 아니다.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감동을 줄수 있는 진정한 감독인 것이다.

6년의 땀과 눈물 !
영화를 제작하면서 나온 비판들... 하지만 그런 비판은 이제는 다소용 없어진거 같습니다.
디워를 통해 모든것이 확인 됐으니깐요. 성공 축하드립니다.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영화]디워 (D-War)

오늘 디워 (The War)를 보러가는데 왠지모를 기대감이 생긴다.
먼저 심형래 감독이 너무나도 열심히 만든 작품이기에 꼭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영화를 한달에 4편이상씩 보지만, 디워는 왠지모를 끌림이란게 있었다.
영화를 보기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디워 리뷰를 살펴보았다.

현재 영화 검색순위 1위 "디워"

감독 : 심형래
출연 : 제이슨 베어, 아만다 브룩스...더보기
개봉일 : 2007년 8월 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판타지, 액션

현재 예매 상황을 잠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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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구나!

 

솔직히 많은 기대는 안하지만, 우리나라 CG의 가능성과 심형래 감독의 노력과 도전은 예고편만 봐도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다.

트렌스포머와 같은 CG가 발전된 나라의 영화와 똑같이 보는것보다 우리나라 CG영화에 한획을 긋는 영화로 얼마만큼 발전이 되었는가 생각하고 평점을 내야 맞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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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형래 감독 그는 누구인가?
내가 어렸을때 생각하기로는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장군 다음에 심형래 감독이었다..
이때는 개그맨 이긴했지만, 개그할때만 해도 얼마나 많은 노력과 즐거움을 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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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촌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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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점을 믿지는 않지만, 일단 네티즌 평점은 괜찮게 나왔다.
물론 전문가 평점은 좋지 않게 나왔지만, 전문가 평은 절대적으로 믿지 말자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충무로,언론,평론가의 충격적 진실] <-- 클릭

그렇다. 위에 충무로,언론,평론가의 충격적 진실이라는 글을 보면, 심형래감독을 영화계에서 매장 시킬려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듯 했다.
영화개봉하기 전에 심형래감독의 학벌을 끄집어 내질않나... 영화평 수준을 굉장히 낮게 평가하지를 않나..

솔직히 심형래 감독은 학벌로 돈을 번것도 아니고, 학벌로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심형래 감독이 고려대 나왔다고 말한적도 없는데 왜 이런걸 지금에서야 끄집어 내는지 참 이해가 안간다.

혹시나 이렇게라도 하면 사람들이 디워를 안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서 였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다른건 안봐도 디워는 봐줘야지' 하는 마음이 대부분이다.

설마 심형래 감독이 디워를 통해 성공하기라도 하면 위압감을 느껴서일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치 않는다.
심형래 감독은 더이상 '영구'의 바보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CG의 하나의 획을 긋는 훌륭한 감독이 될것이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는 나도 심형래 감독을 굉장히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한국의 영화를 세계로 알리려는 생각을 높이 평가할뿐이다.

마지막으로 디워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ps. 디워 감상후기 보기

2007년 7월 29일 일요일

[영화]5.18광주민주화 운동과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왔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화통이 터지고,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란게 참 부끄럽더군요.

그래서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잠깐 찾아보았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그 사건은 무엇인가?
전두환이 1980년 5월17일 전국에 계엄령을 발표합니다. 여기서 계엄령은 국가비상사태 때 병력(兵力)으로써, 개인의 기본권의 일부에 대하여 예외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제도(法制度). 를 말합니다. 그리고 1980년 5월18일 전라도 광주는 피로 물들게 됩니다.

이당시 광주에서 시위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김대중이 전두환의 독재정치와 관련해서 위험적인 대상이었으며, 김대중을 지지하던 지역이 전라도 였습니다.
그로인해 전라도 광주사람들을 빨갱이로 몰고 죄없는 시민들을 총으로 쏘고, 벌거벗은채로 길거리에 질질 끌고 다니며, 몽둥이로 시민들을 무참히 때려 강제로 진압할려구 한 사건으로 간략히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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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던 사람들만 죽인것이 아니라, 아무상관없는 사람도 전부 죽이고, 심지어는 새생명과 임산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광주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으며, 빠져나가게 될경우 민심이 안좋아 지기때문에 벙어리며 편지며 전화까지 봉쇄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말하길 광주에는 죽은 사람이 없다고 방송을 하고, 보상은 커녕 무참히 짓밟힌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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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을 알려면 먼저 12.12사태를 알아야 합니다.

10·26사건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살해된 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 등의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몇사람의 권력을 위해 희생되는 현실을 참을 수 가 없어서 1980년, 여러곳에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보기

1980년 5월 17일
마침내 전국의 비상계엄령이 공포 되었고,

18일..
피로물든 광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80년 5월 18일

00: 05
광주 지역 민주 인사 등 연행

01: 00
광주 일원 공수부대 투입

02: 00
계엄군, 전남대·조선대·광주교대 점령 학생 112명 체포

08: 00
전남대 등 대학교 휴교령(9월 10일까지), 광주·송정·목포 등 고교 휴교령

09: 00
전남대생들 등교 시작

10: 00
전남대 정문 앞에서 학생 50∼60명과 공수대원 대치

10: 20
전남대생 5백 명 공수부대와 투석전 충돌, 전남대생 계엄 철폐를 외치며 도청으로 진출

10: 30
전남대 후문 시민 연행

10: 50
광주역 앞 전남대생 2백 명 집결

11: 00
시위대 금남로 3가 가톨릭센터 앞 연좌 시위

11: 15
시위대 충장로파출소 앞 대치 후 파출소에 투석

11: 30
시위대 가톨릭센터 앞 대치, 연좌 농성

14: 30
동국대 주둔 공수 11여단 광주로 출발

14: 42
도청 앞·금남로 일대 1천 5백여명, 충장로 일대 1천 6백여 명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진압 실패, 7공수 35대대, 31사단 96연대로부터 도청 앞 진압 명령 수령

15: 00
공수부대(7공수) 시내 투입, 진압 작전 실시
- 가톨릭 센터: 33대대
- 충장로: 33대대
- 시위 군중 체포(337명)
- 공중에서 헬기 3대 선회

21: 00
통금 실시, 전국에서 소요 주동자 544명 검거(광주 연행자 477명)


◈ 80년 5월 19일

00: 05∼05: 20
11특전여단 광주 도착, 진압군 재편성

08: 00
계엄사, 민주 인사 및 학생 549명 검거 발표(전국 총계)

09: 00
금남로에 군중들 운집 시작

11: 00
시위 진압 탱크 동원 공수부대 잔혹한 구타, 연행, 총검 사용, 체포된 시위대를 발가벗겨 무릎을 꿇게 한 뒤 머리를 땅에 처박게 하고 군화로 전신 구타. 광주 시내 초등학교 수업 중단 조치, 중·고등학교 귀가 조치

11: 20
도경 작전과장 데모대 놓아주었다고 동구청 입구서 계엄군 하사 등으로부터 집단 구타, 곳곳 부상자 속출

12: 00
수업 받던 학원생 연행

11: 30∼13: 00
시위대 107명 연행

14: 50
일반 시민들의 합류로 시위대 급증

16: 50
최초의 발포: 광주고와 계림파출소 사이 동원빌딩 앞에서 고장난 장갑차 1대, 시위대 150여 명이 접근하자 장갑차에서 발포, 4명 중상, 일부는 계엄군이 싣고 감

17: 40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앞 시위대 완전 분산(비가 내리기 시작함)

18: 00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주차장에 시체 7∼8구 목격됨. 광주공원 시위대 수천 명 '전두환 타도'외침

19: 30
전대 의대 앞 골목길서 최미자양(당시 19세) 계엄군 대검에 가슴 짤림

21: 00
통행금지에도 불구하고 시위 지속

23: 08
3특전여단 광주에 투입


◈ 80년 5월 20일

04: 00
시민 궐기문 살포됨

07: 20
서2동 전남주조장 빈터에서 대검으로 난자, 살해된 월산2동 김행부씨(36)가 변사체로 발견됨. 오전 대체로 소강(비가 오는 날씨)

10: 00
대법원 김재규 등 5명에 사형 확정

10: 20
금남로 3가 30여 명의 젊은 남녀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알몸으로 붙잡혀 기합받는 것이 목격됨. 오전 외신기자, 독일 NDR·ADR TV 유르겐 힌츠페터 광주 도착

14: 20
서방 삼거리 공수부대의 화염방사기에 사망·부상자 발생, 광주역 부근 택시기사 20여 명 조직적 대응책 논의, 금남로 일대 제3공수 11대대 15만 군중에 포위당함

16: 20
가톨릭센터·광주고·충장로·금남로 등지에 시위 학산, 시위대가 도청을 향하는 6개 방면 모든 도로에 밀어닥침

17: 50
충장로 시위대 육탄으로 경찰과 충돌, "광주 시민을 적으로 취급하는 군과 사생결단을 낼 테니 경찰은 비켜달라"협상시도

18: 20
택시기사 시위 참여. 택시 1백 대가 3줄로 광주역 쪽으로 진출

18: 40
전남대 앞 5백 미터 지점, 계엄군 1명사망, 광주역 쪽에서 택시·화물트럭을 앞세운 시위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로 집결

18: 50
택시 120대, 화물트럭·버스 20대 라이트 켜고 금남로 차량 시위. 시민 2만 명 뒤따름

19: 45
도청 광장 공수부대 포위됨. 시위대 태극기를 흔들며 도청으로 진격

20: 00
시위대 MBC 방송국 점령. 체포된 시위대 도청으로 연행. 소방서 시위대 점령. 2∼3대의 소방차 도청 앞 6백 미터 지점까지 돌진. 계림동 시위 군중 1만∼3만 증가(도청 진격), 전남대 병원 앞 1만 증가(도청 진격)

20: 10
노동청 앞 시위대 MBC에 화염병 투척,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시위대에 화학탄 발사

20: 50
시위 군중 시청 점령

21: 00
도청 차고 불탐, 외곽 지역 주유소에서 화염병 제작, 노동청 앞 시위 진압 경찰 4명 사망

21: 40
MBC 방송국 전소

22: 00
심야로 이어지는 투쟁 대열. 광주 시내 모든 거리는 시위 군중 10만 명 이상 운집. 광주역에 투입된 31사단 병력 퇴각, 금남로 3공수 11대대 고립 상태, KBS 앞 3공수 15·12대대 2만 명 시위대와 대치. 전남대 입구 16대대 1백 대 차량과 시위대와 대치. 광주시청 13대대 1만여 명 시위대와 대치. 양동복개상가 20∼30명의 계엄군 시위대에 포위당함


◈ 80년 5월 21일

00: 10
계속 대규모 시위, 전옥주씨 조선대 앞 스피커로 "전두환 물러가라"외치며 시위 주도

00: 20
조선대 쪽 계속 총소리

01: 00
31사단 화염방사기 소대 출동

02: 10
3공수여단, 광주역에서 전남대로 퇴각02: 13 시외전화 불통으로 외부와의 연락두절, 광주 지역 일반 전화선을 지시에 의거 단선 조치

02: 30
계엄군 20사단 사령부 및 62연대 용산역 출발

05: 00
시위대, 2.5t 트럭에 시체를 운반

05: 50
광주역에서 출발한 시위대 1천여명 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연좌 농성. 아침: 계엄사령부 최초로 광주에서 유혈 충돌 공식 발표

08:00
시위대 당국과 협상 시도

08: 50
시위대 광주교도소 기습, 자진 철수

08: 58
20사단 사령부 송정리 도착

09: 00
시위대 아시아 자동차 공장 진입. 대형버스 22대·장갑차 3대·군용 트럭 33대·민간트럭 20대를 몰고나와 도청으로 진격, 버스는 외곽에서 도청으로 시민들 수송, 군인의 과잉 진압 사과 요구, 현정부 규탄, 뉴욕 타임스 특파원 심재훈, 르 몽드지 필립 퐁스 광주 도착

09: 20
한국은행과 가톨릭센터 사이 5천이상 군중, 시체 2구 손수레에 싣고 마이크로 "계엄군은 시체 인도하라"고 주장

09: 50
시민 대표와 장형태 도지사의 협상

10: 30
군헬기 4대가 도청·조선대·전남대에 이·착륙하며 도청 지하실에 모아놓은 시체와 진압 무기, 주요 기밀 서류 공수 시작. 계엄사령관 담화문 발표

10: 48
군헬기에서 "공수 병력 철수시키겠다"방송. 도지사·시장도 설득 방송

10: 56
계엄군 서울로부터 코와 귀를 자극하는 CS액 수송

11: 00∼12: 00
동별로 시위대에게 음식 제공

11: 30
전남 지역 학생 총연맹 명의로 '오후 2시 도청 앞에서 도민궐기대회를 갖자'는 전단 배포. "전남대생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조선대생은 계림파출소, 서강실업과 간호대는 MBC 방송국, 고교생은 산수 오거리, 시민은 도청으로 집결하라"

11: 50
가톨릭센터 앞 벽보 부착: '때려잡자 전두환, 물러가라 최돼지, 사라져라 신현확, 비상계엄 해제하라, 칼부림이 웬말이냐, 너와 나 형제 지방색 타격.'

12: 00
2시까지 퇴각하겠다던 계엄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노한 시민들이 차량을 앞세우고 도청으로 진격. 공수부대 분수대까지 퇴각. 최초의 집단 발포, 시민들은 공포탄인 줄 알았으나 도로의 시민들이 쓰러짐. 부상자를 구하려는 시민들에게까지 사격. 계엄군은 도청과 수협·전일빌딩 옥상에서 정확한 조준 사격을 함. 전남대 정문에서도 발포. "러닝 셔츠만 입고 한 손에 태극기를 든 청년이 탄 장갑차가 도청을 향해 질주해갔다. 그때 도청 쪽에서 한 발의 총소리가 들렸다. 공수부대의 조준 사격이었다"(증언). "고막을 찢는 듯한 총성과 함께 장갑차에 탔던 청년이 총탄에 맞고 그대로 넘어졌다. 당시 사상자가 얼마였는지는 취재가 불가능"(월간조선, 1985.7)

12: 10
돌진하는 시위대의 장갑차에 계엄군 4∼5명이 쓰러짐. 계엄군은 살상을 예고하듯 분수대 앞에 횡대로 도열

12: 30
분노한 시민, 각목을 든 채 도청을 향해 돌격. 비무장 시민에게 발포. 시위대 맨 앞의 503벤츠 고속버스가 군경의 저지선으로 돌격하자 계엄군 쪽에서 LMG기관총 난사, 차에 탄 시위대 20여 명 살상당함

12: 40
버스 4대 화순 중앙파출소에 방화. 주민 합세 후 무기 탈취

12: 45
시민에게 본격 발포(전교사 작전 일지 80-4호)

12: 55
도청 앞 YMCA에서 계엄군 발사, 시민 수십 명 살상. 분수대 앞 계엄군은 횡대로 앉아 금남로 쪽을 향해 거총 자세

12: 58
광성여객 버스 2대가 도청으로 진격. 공수부대 발포. 운전사 사망. 장갑차 1대가 도청으로 진격, 집중 사격을 받았으나 학동 쪽으로 빠져나감

13: 00
무장을 시작한 시위대

13: 40
군용헬기 1대 도청 광장에 착륙, 일반 계엄군 9명 태우고 이륙, 도청 광장 임시 헬기장이 돼 군용기와 경찰 헬기가 수시로 이·착륙, 공수부대로 부상자와 중요 문서 이송

13: 50
전남도청에서 도지사가 시위 군중에게 요구 사항을 승낙할 테니 해산하라고 방송

13: 55
"3시까지 연행자를 석방한다"라고 군용헬기 선무 방송

14: 00
월산동 로터리와 전남도청 부근 헬기 기총 소사

15: 00
광주 시내 종합·개인 병원 총상 환자들로 가득 참

16: 30
광주 지역 공수대원 철수 명령

17: 00
시민군 총기 교육 후 지역방위대 편성, 광주 공원 광장에서 특공대 편성, 헌혈하고 돌아가던 박금희양 총에 맞아 즉사, 도청에 남은 계엄군 화순 주남마을 쪽으로 철수

24: 00
외신 기자, AP통신 테리 앤더슨, 타임지 사진기자 로빈 모야 광주 도착


◈ 80년 5월 22일

00: 05
완도 경찰서 파괴

03: 00
영광 1천여 명 시위 후 해산

04: 55
계엄군 증원 병력 광주 도착(20사단 60연대)

05: 00
남평에 매복중인 계엄군의 사격으로 사망 1명, 부상 3명

07: 30

전남대 교정에서 암매장된 고교생 발견. 아침 뉴욕 타임스와 르 몽드지 1면 머릿기사, 최초로 세계에 알려짐

08: 10
도청 간부 수습 대책 논의

09: 30
계엄군 피란 행렬에 집중 사격

10: 30
2군사령부 자위권 행사 지시. 목포 일부 파출소 피탈

12: 00
도청 앞 5만 시민궐기대회 개최. '5·18수습대책위원회'결성. 전남일보 현관에서 무기 회수

12: 12
함평 경찰서 점거. 시위대 수천 명 시위

12: 00∼15: 00
수습위원 계엄사 방문, 협상 결렬

13: 00
무등도서관 앞 1명 사망

13: 16
화순-광주간 도로에서 공수부대, 차량 1대 사격, 1명 사망, 7명 체포

14: 00
목포역 광장 시민궐기대회

14: 30
광주시장이 비행기에서 호소 전단 살포, 박충훈 총리 호소문 발표

15: 00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 개최, 매일 오후 3시와 9시 2차례 도청 앞 분수대에서 궐기대회 개최 결정

15: 18
관 위에 태극기를 덮은 시체 18구 도청 분수대에 안치. 추도식 거행

16: 00
부상자를 위한 모금 운동

16: 30
영암 지역 무기 회수 시작

17: 00
계엄사와 협상 결과 보고. 통합병원 통로에서 62연대 2대대와 시민군 교전: 사망 3, 연행 25, 부상 10명

17: 55
848명의 연행 시위대 석방

18: 00
학생수습위원회 구성. 도청 상황실에서 증명서 발급. 쌍촌아파트 교전

18: 30
공수부대 화순 너릿재 터널 트럭으로 봉쇄. 전대병원 시체 18구 도청 분수대 앞으로 옮겨 추도식. 관구입을 위한 모금 운동 전개

19: 10
사망자 56명, 도청 앞 광장에서 관을 놓고 추도식

22: 00
무기 회수를 둘러싼 시민군 내부 대립 심화


◈ 80년 5월 23일

01: 20
해남 우슬재에서 교전. 시위대 20명 이상 사망. 다수 부상

06: 00
광주시 안정 회복. 남녀 고교생 7백 명 시내 전역 청소. 장례반·총기 회수반·차량 통제반으로 구분. 도청 중심으로 대자보, '민주시민강령'선포
1.시민은 시민군을 믿고 적극 협조합시다
2.시민군은 위장된 계엄군 및 불순분자를 주의합시다
3.질서 회복에 힘씁시다
4.평소 생활로 복귀합시다

07: 00
시청 직원과 시민들 거리 청소에 나섬

09: 00
녹두서점에 모인 교수·학생 시민궐기대회 계획. 학생들 무기 회수. 구용상 광주시장 전직원 정상 근무 지시

10: 00
수습대책위원회 조직 개편,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전대병원 26명, 기독병원 17명, 적십자병원 21명, 조대병원 1명, 요한병원 2명, 기타 3명, 도청 내 44명 등 114명

10: 05
전남대 구내에서 교련복 차림 남자 고교생 가매장돼 있는 것을 도청으로 운구

12: 00
8백여 정 총기 회수, 차량 통제반 차량 단속

13: 00
계엄사 연행 학생 34명 석방

14: 00
주남마을 양민 학살. 18명 사망. 수습위원 10명 무기 1백 정 반납

14: 20
학생들 시민 시체 50구 상무관서 분수대로 운구. 시민 2만 명 운집

15: 00
제1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장례 준비 모금 운동 전개해 1백만 원 대책위에 전달. 지원동 버스 종점에서 총격전. 계엄사 붉은 글씨의 경고문을 전역에 살포

16: 00
지원동 민가에 계엄군 난입, 시민을 향해 난사.

19: 40
계엄분소는 수습위원들에게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927명 연행해 882명 훈방하고 23일 34명을 석방해 현재 45명만 남아 있다고 발표

21: 00
목포역 시국성토대회. 5만여 명 횃불 시위


◈ 80년 5월 24일

새벽
외곽 지역을 돌아다니며 무기 회수(조비오 신부 등 수습위원 4명)

06: 00
무기 2천 7백 정 회수(50%)

08: 00
광주 시내 생필품 품절. 무기 자진 반납 시한 12시까지 연장. 수습위 사망자 확인·미확인 합쳐 6백여명. 중경상자는 2천여 명이라고 발표

09: 00
충정작전을 위한 계엄군 배치

10: 30
계엄군의 오인 사격. 31사단 96연대 3대대와 기갑학교 병력 사망 5, 중상 11, 경상 11명, 주남마을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양 헬기로 후송

12: 00
시체 3구 암매장한 계엄군 무선교신 도청

13: 00
계엄사, 무기 반납 시한을 18시로 연장. 11공수 주남마을서 철수 개시

13: 10
공수부대 철수하면서 좌우 난사. 원제마을 저수지서 멱감던 방광범군(당시 10세) 숨지고 10분 뒤 진제마을에서 총소리 피해 달아나다 벗겨진 고무신 주우려던 전재수군(당시 10세)이 총에 맞아 사망

14: 05
계엄군의 오인 사격. 효천역 전방 1Km 지점 11공수와 보병학교 병력 사망 9명 부상 33명 발생, 진월동 양민학살 2명 사망

14: 10
북동에서 학생 가장한 불량배가 주민들에게 금품을 강요한다는 제보 받고 시민군 출동

15: 00
수백의 공수대원 송정리 비행장에서 이동. 송정리에서도 헬기 기총소사. 제2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전북서 환자용 산소 1백통 지원

16: 30
도청 앞 상무관에 미확인 시체 40여 구 안치

18: 49
계엄분소 예하 각 부대에 확인 사살과 이동시 표식을 달 것을 지시

21: 00
민간인으로 위장 계엄군 시내 투입


◈ 80년 5월 25일

08: 00
조작된 독침 사건 발생

11: 05
초교파적인 모금 운동. 시체 120구로 늘어남

12: 35
목포. 비상구국기도회 열림

13: 10
목포서 기독교인 1천 명 시위 이어 목포역 광정서 구국기도회

13: 35
피란가던 청년 2명 산 속에서 사망

14: 20
화순 방면 1번 버스 종점 부근서 시체 2구 발견됐으나 계엄군이 인도 거부

15: 00
제3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궐기대회 후 검정 리본 착용. 가두 시위

19: 00
광주시 영세민에게 가구당 5천 원씩 지급. 정부미 6천 가마 방출

20: 00
계엄사, 광주 다시 악화됐다고 발표


◈ 80년 5월 26일

04: 00∼06: 00
외곽 지역 주둔 계엄군 광주 진입

05: 00
시민수습대책위 17명이 '총알받이로 나가 계엄군을 막자'고 결의. 진입 현장에서 탱크 앞에 드러누워 계엄군의 시내 진입 저지

07: 20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알리는 방송

11: 30∼13: 00
제4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15: 00
제5차 민주 수호 범시민궐기대회 '우리는 왜 총을 들게 되었나' 낭독. 7공수 광주공원 소탕 명령 받음

16: 00
광주 상황을 알리기 위해 탈출(김요셉)

19: 00
외국인 207명 광주에서 철수

21: 00
전교사 문관 도청 잠입. 지하실 TNT 뇌관 분리 제거 후 복귀. 특전대 하사관 시내 사복 정찰

23: 00
시민군 병력 배치. 계림초교 30명, 유동 삼거리 10명, 덕림산 20명, 전일빌딩 40명, 전대병원 옥상·서방시장 10명, 지원동 30명, 도청 2백∼3백 명


◈ 80년 5월 27일

00: 00
시내전화 끊김, 특전사 특공대 행동 개시

02: 00
20사단 행동 개시, 계엄군의 진입을 알리는 가두 방송

03: 30
계엄군 광주 전격 기습

04: 00
31사단 무등경기장 중심으로 행동개시. 7공수 광주공원 도착. 11공수 관광호텔·전일빌딩 점거. 도청 앞 완전 포위. 금남로 중심 시가전

04: 10
3공수 도청 후문 월담. 도청 총격전

04: 30∼06: 30
도청 함락

05: 00
계엄분소장 담화 발표. 광주 KBS 행진곡과 함께 군의 진입을 알리는 방송 되풀이

05: 23
광주시 점령 완료

06: 00
KBS를 통해 '폭도들은 진압됐다. 시민들은 위험하니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 방송 (영어)

07: 30∼09: 30
기갑학교 전차 14대 A.P.C. 1대 무력시위. 공무원 근무개시, 시내전화 개통

08: 00
광주경찰서 노병기 경장 풍향동서 출근길에 총탄 맞고 사망

08: 40
도청 안에 시체, 회의실 앞 분신소 시체 1구, 뒤뜰에 1구, 민원실 계단 앞 5구, 건물 사이 7구, 경비과 옆 1구 등 총 15구

10: 30
도경 지하실에 숨어 있던 고교생 등 7명 생포

11: 00
목포, 제5차 민주 헌정 수립을 위한 목포시민궐기대회, 시내 주요 건물 옥상 점거

12: 00
장형태 지사 의원 면직, 후임에 김종호 금호실업 대표

22: 50
목포 시민, 3천 5백여 명 횃불 시위.


28일 새벽 4시경
시위대 체포·연행으로 목포 시위 막내림

사실 그때당시 사병으로 근무했던 군인보다도 위에서 자기의 권력을 챙겨먹는 이기적인 윗대가리들이 잘못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보면 그사건이 폭도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있는데, 그럼 어린아이와 아기 그리고 힘없는 임산부를 죽인건 무슨이유인지요?
설마 어린아기가 총들고 시위를 했다고 보시는건 아니겠지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과, 그때당시에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전사모와 화려한 휴가 글읽기